서로

여섯 개의 방

지난 44년 동안 저는 머물 자리가 없던 사람들을 위해 방을 마련해 왔습니다.

의정부의 보육원. 통역 부스. 한국어로 기도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교회. 남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휴스턴의 암 병동. 그리고 지금은 박물관. 서로 다른 여섯 개의 방, 그러나 하나의 마음 — 그리고 그중 어느 하나도 혼자 지은 것이 없습니다.

1984 – 1987 · 의정부 화랑·숭신 보육원

서로 용납하라.

스물한 살에 편도 항공권 한 장을 들고,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 한 채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선교사 사택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지내던 의정부의 한 보육원, 그곳이 제 자리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3년을 지냈습니다. 우리는 함께 모내기를 했습니다. 저도 아이들 곁에서 논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었습니다.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점점 덜 돌아왔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았습니다.

당신이 어렸을 때, 당신 곁에서 함께 물속에 서 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보육원 뒤 논에서 모내기, 의정부
보육원 뒤 논에서 모내기, 의정부

1988 – 1997 · 영락교회 · 국가조찬기도회

통역 부스

서로 복종하라.

9년 동안 제 일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헤드폰을 쓰고 부스 안에 앉아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주일 아침 영락교회에서,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 앞에 선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통역자에게는 자기 문장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뜻을 그대로 옮길 뿐, 거기에 무엇도 보태지 않습니다. 스물한 살 때 저는 지하실에 혼자 앉아 16mm 필름을 보았습니다.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김장환 목사님이 빌리 그레이엄 곁에 서서 그의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고 있었고, 닷새 동안 320만 명이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는 평생의 많은 시간을 그 일을 하며 보냈습니다.

이번 주, 누구의 목소리가 옮겨져야 합니까?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그 자리에 설 수 있겠습니까?

통역 부스 — 창 위의 손글씨 표지판에 KOREAN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통역 부스 — 창 위의 손글씨 표지판에 KOREAN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1998 – 2025 · 영락교회 IWE · 소망교회 영어예배부 · 신촌교회 국제사역

당신의 언어로 기도할 수 있는 교회

서로 받으라.

서울에는 한국어로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학생, 노동자, 군인, 고향에서 아주 멀리 온 학자들. 그래서 우리는 방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영어 국제예배(IWE)는 1998년 영락교회에서 시작되었고 저는 그곳에서 14년을 머물렀습니다. 그다음은 소망교회, 그다음은 2025년 11월까지 신촌교회였습니다. 2008년 추수감사 주일에는 한국어 회중과 영어 회중이 한 예배로 모였습니다. 저는 영어로 인도하며 한국어 화면을 띄웠고, 이어서 한국어로 인도하며 영어 화면을 띄웠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아무도 손님이 아니었습니다.

매주 당신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직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선교관 계단에 선 국제 회중, 서울
선교관 계단에 선 국제 회중, 서울

2007 – 2022 · 서울외국인학교 이사회 및 재단

남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서로 짐을 지라.

학교 이사회에서 보낸 14년은 저녁 자리에서 꺼낼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사로, 총무로, 그리고 재단 이사장으로 8년. 대부분은 예산과 건물, 그리고 제가 평생 만나지 못할 아이들에게 언젠가 중요해질 일들에 관한 긴 회의였습니다. 처음 10년이 지난 뒤의 사랑은 대개 그런 모습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끝내 알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지루한 자리에 계속 나타나는 것.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아도 끝까지 계속할 일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서울외국인학교 — 재학생들의 나라 국기
서울외국인학교 — 재학생들의 나라 국기

2012 – 2013 ·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병원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방

서로 위로하라.

대한민국이 저를 국민으로 받아 준 그해, 저는 휴스턴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곁에 앉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MD 앤더슨에서 임상목회교육(CPE) 4단위. 그곳에서 소수였던 한국인 환자들이,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채, 생애 가장 힘든 한 주를 지나고 있었고, 제가 30년 동안 배워 온 그 언어가 바로 그들에게 필요했습니다. 그 방은 고칠 수 있는 방이 아닙니다. 들어가서, 머물고, 문 쪽을 쳐다보지 않는 것뿐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방이 있습니까?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지금 · 한국성서박물관

온 나라가 걸어 들어올 수 있는 방

서로 가르치라.

2025년 11월, 예순다섯이 되면서 8년 계획을 마쳤습니다. 신촌교회 강단에서 내려와 전임 선교사로 돌아왔습니다. 은퇴가 아니라 완성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짓고 있는 것은 한국에 세울 영구적인 공간입니다. 성경이 누군가 건네주는 책이 아니라, 직접 걸어 들어가는 자리가 되는 곳입니다. 의정부에서 스물셋이던 때와 똑같은 마음입니다. 방을 하나 마련할 것. 그리고 문을 열어 둘 것.

당신이라면 예순다섯에 무엇을 시작하겠습니까?

광화문 — 박물관은 제가 서 있던 이 자리에서 몇 걸음 되지 않는 곳에 그려집니다
광화문 — 박물관은 제가 서 있던 이 자리에서 몇 걸음 되지 않는 곳에 그려집니다

2025–2026 · 대전, 원주, 세종

그리고 가운데 네트가 있는 또 하나의 방

서로 격려하라.

2025년에 저는 전국 시니어 복식 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습니다. 6월 대전, 10월 원주. 그리고 골드리그로 승격했습니다. 승격은 그 자리에 속하게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동안 저는 더 잘 치는 이들에게 계속 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2026년 9월 2일, 제3회 세종특별자치시협회장배 전국 시니어 테니스대회에서 이병성 님과 함께 65~69세부 금배에서 우승했습니다. 골드리그에서의 첫 우승이었습니다. 저는 900달러와 카우보이 모자를 들고,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 한 채 이 나라에 왔습니다. 지금은 서울시 명예시민으로서 또래의 남자들과 전국대회에서 숨이 차도록 뜁니다. 단식이 아니라 복식입니다. 저는 무엇이든 혼자서는 그리 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8회 원주시장배 전국 시니어테니스대회 · 2025년 10월 23–24일
제8회 원주시장배 전국 시니어테니스대회 · 2025년 10월 23–24일
65~69세부 금배 우승 — 이병성 님과 함께, 세종, 2026년 9월 2일
65~69세부 금배 우승 — 이병성 님과 함께, 세종, 2026년 9월 2일